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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태용'의 '프랑스 유학으로 배운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보고

리버김 2020. 3. 27.

 

 

프랑스 유학으로 배운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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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문학이 현대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의미있는 통찰을 담은 영상이다.

 

평소 '태용' 채널의 인터뷰 영상들은 질문의 깊이가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상은 내 전공에 관한 주제이기도 하고, 평소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던 질문들이어서 재미있게 봤다. 뿐만 아니라 생각치 못한 '교육과 인문학의 교차'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셨다. 그리고 언론에 대한 생각도.

 

작년 회사에서 모 위원님께서 전공을 물으시더니 인간에 대한 모든 분석이 뇌과학 및 진화심리학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철학은 이제 의미를 잃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셨는데, 나는 곧바로 그래도 윤리학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겠냐 대답했었다.(인턴 첫 주라 하루종일 초긴장상태였는데도...!) 그렇게나 빨리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답변이 내가 철학 공부를 계속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기자라는 직업을 향해 가고있는 근거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인간 존엄성, 평등권, 보편적 복지와 같은 윤리적 가치들이 구성된 것이든, 합의된 것이든, 부여받은 것이든 하나 확실한 것은 인간 사회의 필요에 의해 이름 지어진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의 주체인 인간의 의지가 뇌신경에 종속돼 있는가는 전혀 증명된 바가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주장은 과장되고 터무니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세뇌에 가까운 가치 주입이나 강요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 윤리다. 인간은 사회를 구성함과 거의 동시에 윤리적 당위를 이야기해 왔고, 이는 인간 욕망과 이성적 성찰의 조화의 산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인간 보편의 복지와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이고, 나의 직업윤리가 지향하는 하나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세계공동체주의라는 말이 있다면 이런 말을 내게 붙이는 것도 적당할 것 같다.

 

교육의 보수적 측면과 진보적 측면, 두 특성에 충실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가장 와닿았다. 인문학 역시 사회로 나아가서는 교육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사는 인문학의 매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인문학적 논변을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사실을 전하는 문장들의 행간에 숨겨진 기자의 생각을 따라 기사를 읽어가고, 누군가는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기사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직업적 목표를 설명할 때, 또 인턴 채용 시즌 당시 자기소개서를 쓸 때면 나는 항상 '독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언론이 보수적인-교수님의 정의에 따른-역할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비교적 쉬운 일일 것이다. 그보다도 낮은 차원의 언론은 좋은 사회를 위한 작은 지혜조차 담지 못하는 언론이다. 내가 지향하는 언론의 모습은 진보를 만들어내는 언론이다. 인간 사회를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생각하는 호모 사피엔스들이 자신들의 호혜적 관계를 뿌리내리게 하는 데 기여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주체와 객체 간의 구분이 흐려지는 AI와 뇌과학의 시대는, 오히려 새로운 주체로서의 인간을 확립할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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